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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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그림 이야기 (문학사상 2001.5) 등록일 2001-05-28 22:46:05
작성자 이현 파일명


눈오고, 푸르른 밤


화가 이 현

  한 계절 동안 참 많은 눈이 내렸다. 축복처럼.

로마의 겨울은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고, 한국에서 지내는 겨울에도 오래 눈다운 눈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 부터 눈에 대한 이상한 그리움, 허기같은 것이 커져 이 몇 해 동안 눈이 아주 많이 내리고 쌓여 오래 녹지 않는 그런 풍경, 그런 어느 곳에 가기를 열망 했었다. 그런 곳으로 떠올리곤 했던 곳이 시베리아나 북구 노르웨이 바닷가, 혹은 일본의 북쪽섬 어디 쯤이었었다.

 조용히 하얗게, 모든 소음과 사물을 덮어 잠재우고, 아주 멀리까지 나아가 그 끝에 차고 눈이 시리게 파아란 바다를 칼 처럼 이고 있는 그런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음악이 없어도, 따뜻한 차 한잔 없어도 그대로 넉넉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 속에 그런 열망을 안고도 어쩌지 못하고 일과 시간에 쫓기다 결국 병원에서 맞이하게 되었던 눈. 긴 겨울동안 참으로 많은 눈이 내렸었다. 그래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던 눈이 있어 내게는 고마운 겨울이었다.

   

그림은 본 것을 그리기도 하지만 보고싶은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현실을 그리기도 꿈을 그리기도 하는 것처럼 본 것을 그리든, 보고 싶은 것을 그리든, 그것은 작가의 심상 풍경인 것이다.

 내 마음 속의 풍경이 저와 비슷한 풍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다같이 행복하여 조용히 평화롭다.

  약력 :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립 로마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서울과 로마에서 개인전 11회, 단체전 다수 개최.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2001년 5월 문학사상 中



눈오고 푸르른 밤
2000 / oil on canvas / 144 X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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