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아티스트s
아티스트s

 >  AUTHOR  >  AUTHOR'S

  






       Korean   |   Italian

나의 의식 속에는 언제나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공존한다. 나와 우주. 한 개체로서의 존재인 나의 내부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세계와 나의 외부를 이루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 혹은 나를 포함하고 있는 - 우주라는 다른 하나의 세계. 이 둘은 절대적 불가분의 연관관계로서 서로 열려 맞닿아 있거나 또는 매순간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세계로 공존하며, 전체 속에서 이 두개의 세계는 하나이다.

나는 물이고 불이고 공기이며 흙이고 빛이고 나는 모든 것이며 또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의 전체 세계 속에서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 아닌 것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개체와 개체들 또한 서로 구별되어 독립적으로 존재되지 않는다. 하늘과 바람과 숲이 해와 바다와 새와 별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시간과 공간도 내부와 외부도 생과 죽음도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단지, 우주라는 하나의 거대한 전체 속에서 끊임없는 결합과 해체, 생성과 소멸이 있을 뿐 - 물질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의 내부로부터 혹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일어나는 강한 욕구들 - 속박과 자유에 대한, 비상과 추락에 대한, 복종과 저항에 대한, 충만과 결핍에 대한, 익숙한 것 혹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와 파괴에 대한, 생과 죽음에 대한... 동시 욕구들 - 집요하고도 강하게 일어나는 이 이율배반적 동시 욕구들로 인해 나는 매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받고 내가 나로서 존재함을 깨닫는다. 이런 종류의 욕구들, 그리고 나의 감각과 지각, 사유의 시간들이 한 생명체로서의 나를 매순간 새롭게 눈뜨게 하고, 살게 하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도록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작업, 즉 그림이란 나의 내부와 외부 세계의 교감이며, 또한 그것은 순간순간의 이 두 세계의 강한 맞부딪힘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리라.

나의 내부와 외부 세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속에서 나는 나의 감각이나 내면의 상에 부딪혀 오는 어떤 인상, 이미지들, 내가 지각할 수 있거나 인식할 수 있는 한 가능한 모든 것들을 내 안에 껴안아 한 점 그림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그리고, 논리나 이성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진솔하게 표현해 내는 그것이 심미적으로 어떤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명쾌한 것들을 좋아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순수하고 명쾌한 선과 면, 색채들만을 선택해 절제해 사용하며, 회화의 최소한의 기본요소·조형원리들만을 사용하여 회화로서의 최대한의 표현효과를 이끌어내 보고자 한다.

나는 하나의 작품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의미나 내용보다 그 자체로서 하나의 순수한 시각적 현실 존재로 완성될 수 있는 것에 더 비중을 둔다. 하나의 화면 위에서 주제의 실체와 공간의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지 않으며 단지, 화면의 주형상과 부형상이 만들어 내는 각각의 형태들, 각각의 선 면 색채들의 관계와 어울림, 그리고 그 각각의 요소들이 전체적인 이미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 즉 부분과 부분, 부분들과 전체의 연관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며, 부분들과 전체의 결합으로서 하나의 순수한 심미적 현실 존재로 완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의 작품은 결국 부분과 전체로서 나타나며 그 전체는 또 다른 전체에 관계되고 최종적으로는 절대적인 전체에 관계되고 일치된다.

나에게 주어진 생의 순간들, 내가 나로서 살수 있는 생의 모든 시간들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정신의 영토를 확장하며, 나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과 모든 능력을 다하여,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껴안고 그리고 표현해 내는 일, 그 일만이 내 생의 전체 의미이며, 또한, 그것은 이 지상에 살아 있는 날 동안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내가 바라보고 만지고 숨쉬는 이 지상의 것들을 나는 가장 사랑한다.

깊고 맑은 물 같은 살아 있는 내면의 거울을 준비하고, 거기에 비쳐져 오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때묻지 않는 처음의 모습들, 충만한 생명력과, 순결한 자연의 모습들, 빛과 꿈 같은 것들, 떠나고 순수히 비워진 것들, 그리운 것들...

그리고 나는 고요를 그리고 싶다. 평화를, 휴식을, 영원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시를. 한편, 한편 캔바스의 희고 평평한 공간 위에.

1992.9. ROMA 이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