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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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인생 최고/최악의 전시회 -문화웹진 라이코스, Cultizen에 게재 등록일 2004-07-30 12:24:26
작성자 이 현 파일명

연녹색의 숲으로부터 천상의 소리인 듯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작은 터치에도 쨍 하고 깨질 것 같은 파아란 하늘, 달콤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 작게 살랑이는 물결에 반사되는 빛의 화음.

모든 길들의 물! , 물위에 떠있는 뽀얀 아이보리 빛 건물들엔 햇빛만큼 화사하고 찬란한 갖가지 색채의 꽃들이 창문마다 드리워져 있는, 물의 도시 베니스의 풍경은 그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빼어나게 아름다운 도시중의 도시이리라.

산 마르코 광장을 가득 메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수많은 비둘기 떼가 함께 어우러져 평화롭고 여유롭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두칼레 궁전은 갖가지 진귀한 보물들을 가득 품은 채 도시의 중앙에 우뚝 서서 이 모두를 감싸 안고 있는듯하다.

6월, 그야말로 만물이 한껏 제 빛과 생명력을 다하여 풍요롭게 하나되어 축제를 벌이는 베니스에 또 하나의 제전이 함께한다. 다름아닌 세계 제일의 권위와 전통의 미술제전, 베니스 비엔날레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찬란한 빛, 그리고 회색의 쓸쓸함" -그 해 봄의 베니스 비엔날레

나에게 인상 깊었던 전시회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그러니까 1993년 제 45차 비엔날레 이다. 그 해 6월 베니스의 초여름은 그렇듯 풍요롭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마치 꿈 속이었던 듯. 그때 나는 유학상태로 로마에 머무르고 있었고, 나의 첫 개인전을 로마에서 막 마치고난 후였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초대장을 받아 들고 내가 무슨 큰 상이라도 받은 듯한 설레임과 기쁨이 일었다. 큰 일을 마치고 난 후 여서 더욱 그러했기도 했겠지만 그곳이 베니스였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한국인 화가 백남준이 그 행사의 가장 큰 상인 황금 사자상을 받는 것이었다. 그 무렵 이태리와 한국의 신문들에선(물론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러했겠지만) 그에 대한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 한국인 백남준.....!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었다.

산타루치아 공항에 내렸을 때, 온통 화사한 빛으로 눈이 부셨다. 빛은 하늘에서 공중에서, 발 밑에 흐르는 잔물결 위에 부딪치고 반사되어 춤추며 작고 닫힌 육체를 단숨에 열고 허물어뜨려 존재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고 말았다. 건물과 공원, 구조물들 외에는 전부가 물인 도시, 모든 길들도 물이다. 이 도시에서의 교통수단도 물론 배가 된다. 버스 배, 택시 배, 자가용 배.... 버스 배를 타고 행사가 열리는 CASTELLO DEI GIARDINI로 향했다.

유월의 아침, 세계의 각계 명사들과 예술가들이 참석한 우아한 오픈닝과 리셉션을 끝내고 전시를 둘러보았다. 세계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 우는 이 전시는 그 이름만큼 규모가 커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열흘 내지 보름은 잡아야 할 것이다. 나는 여러 날을 머무를 수 없어 2, 3일 일정으로 그 동안 특별히 관심이 있었거나 마음 끄는 전시를 선택해 보았다. 정말로 다양한 작업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작업에서는 충격을, 또 어떤 작품에서는 영감과 비전을, 혹은 미감이 상하기도 하면서... 따뜻한 햇살아래 걷고 또 걸으며 보는 것에 몰두한 며칠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성으로는 우선 진보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방법적으로 새로운 문제제기나 이슈를 수용하여 세계미술의 새로운 흐름과 방향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역할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각 나라의 개별 관이 있어 각 나라의 새로운 미술 동향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대외적으로 제시하고 그 전체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면서 내일을 전망할 수 있게 한다.

독일 관에 전시된 독일인 백남준 展

그때 베니스에는 한국 관이 없었다. 세계 미술에서 한국의 위상은 거의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이 참가하게 된 것도 이제 10여년이 됐을 뿐이다. 그 동안 한국은 그저 보이지 않는 변방의 약소국이었다.

백남준 전시는 독일 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그의 비디오 아트였다. 관람객들에게 호기심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고 흥미 있고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을 더해 슬펐던 것은, 팜플릿이며 모든 홍보물에 인쇄되기를 백남준은 독일인이었다. 한국 관이 없어 독일 관에서 전시하게 되었으니 주최측의 착오가 있었는지도,혹은 젊은 날 백남준이 독일에서 공부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니 그리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 알 수 없이 일던 어떤 분노 같은 슬픔과 쓸쓸함은 아직도 다 지워지지 않은 채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고있다, 그 비감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채.

이제는 베니스의 까스뗄로 데이 쟈르디니에 독립된 한국 전시관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이제 집 없는 아이의 설움 같은 것은 받지 않을 것이다.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나 수준은 별개의 문제라 하더라도. 그 해 봄의 베니스는 내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를 것이다. 생생하고 선명한 그림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조금 쓸쓸하게.


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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