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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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UNESCO에서 만난 이현의 그림들 등록일 2005-03-03 13:14:24
작성자 전창곤 파일명


UNESCO에서 만난 이현의 그림들


전창곤(전창곤유럽문화예술연구소)


파리생활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요사이의 그 곳 날씨가 얼마만큼이나 암울함을 잘 알 것이다. 몽탕이 그리도 감미롭게 읊던 낙엽들도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부슬비에 그 바삭바삭함을 상실하고, 뤽상부르그 공원의 벤치들도 밤새 사뿐히 내린 이슬에 영양과다일 듯한 비둘기들만의 점유물이 되는 때도 요즈음의 파리 풍경이다. 파리의 가을이 늘 연상케 하는 감상적인 멜랑콜리도 북쪽의 찬바람에 점차 그 농도를 잃어가고, 파리사람들의 한껏 치켜세운 후렌치 코트의 옷깃이나 보도에 낭랑하게 울리는 총총걸음의 여운들도 이제는 우리가 속절없이 겨울의 문턱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징후들이다. 몇 가지 일로 오랜 유학생활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다시 찾은 나에게도 이러한 계절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던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귀국생활에서 벌써 우리의 청명한 겨울 햇빛에 길들여졌음에서이리라.

요즈음의 걱정스러운 파리날씨를 장황하게 늘어 논 이유에는, 아마도 며칠 전 우체통에 삐죽이 내밀어져 있었던 이현 전시초대장과의 조우에서 느꼈던 반가움 때문이다. 동물원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받은” 셈이다. “삐죽이 내민” 모습은 그 곳 우체통에서 보기 힘든 그녀 초대장의 길다란 직사각 봉투의 물리적 형태에서 기인함이고, “반가움”에는 그 동안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던 우리들의 만남에서 그녀가 보여줬던 따뜻함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이었다. 묵고있던 파리근교의 숙소에서 “이국적”모습으로 치장한 친구의 전시초대장과의 만남은, 회색 빛의 그 곳 하늘을, 잠시나마, 그녀가 그리 자주 그리는 안면도나 지중해의 파란 하늘로 물들였던 것이다. 초대장을 열 때 내심 마음이 설레었던 것은, 이러한 만남의 공간적 특수성은 차치하더라도, 나에게 그리 흔치 않았던 이현 작품과의 대면에 대한 기대감에서이다. 초대장의 면면에서 벌써, 로마와 서울을 왕래하며 활발하게 작업하던 화가에게도, 연이은 베니스 치니재단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의 전시가 화가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그리고 그녀의 작품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던 지를 짐작케 하고 있었다.

베르니사쥬(개막식)에 좀 늦게 도착한 나에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전시장소의 위엄이나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의 숫자보다는, 화가의 작품에서 “뿜어나오는” 현란한 색채들의 향연이었다. 저녁 무렵의 어둑한 파리 풍경과 전후의 실용미학의 산물인 회색빛 유네스코 건물을 줄 곳 통과해 온 나에게 이러한 느낌은 더욱 증폭되어 감지됐을 지도 모른다. 각 화폭에서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파랑, 노랑, 빨강의 원색들은, 그 색채들의 근원성으로, 작품의 모티프가 지중해의 햇빛이든 또는 안면도의 푸른 밤이든지, 대상들의 가장 원초적인 세계들을 추출해 내고 있었다. 전시개막식을 주관한 한 유네스코 관계자의 말처럼, “저 먼 극동의 화가가 지중해의 자연l을 적확히 표출할 수 있음”에는 화가의 이러한 근원적인 요소들에 대한 집착이 그 중요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관람객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마니피끄(Magnifique!!!)이란 찬사는, 예술을 관념의 세계로만 재단했던 근 반세기 현대미술에 대한 염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들 의식의 저변에 상흔처럼 부유하던 가식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천진하게 드러내준 화가의 용기에 대한 조그마한 박수인 셈이다.

그러나 이현의 작품세계에서 이러한 제한된 원색들의 사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극히 자율적인 화면분할에 있다. 그녀의 그림에서 각 사물들의 비율은, 자연에서 우리들이 시각적으로 감지하는 그 어떠한 정규적 비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거대한 산은 때로는 조그만 오두막의 문짝만치나 왜소하게 느껴지고, 몇 평 남짓한 밭뙈기가 한없이 넓기만 할 것 같은 바다와 비견되기도 하는 것이다. 유일한 규준은 그녀의 감성이 지시하는 극히 주관적인 비율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이러한 개인적인 화면 분할과 서양미술에서 흔치않은 여백의 존재는 그녀의 팔레트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에게 동양적 감수성을 지닌 화가로 간주케 하는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프랑스 지인들을 개막식에 초대해서 반가운 해후의 기회가 됐었다. 모두들 유네스코 같은 큰 기관에서 한국의 화가 그림이 전시된 것을 놀라워했고, 작품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아 화가를 위해 내심 기뻐했었다. 그 중 한 분이 작가의 그림이 “인상파”그림과 가까운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인상파 화가들의 본령이 빛과 사물에 집중한 화가들의 개인적인 인상을 중시했다면, 이현의 화폭에 가득한 빛과 그녀의 개인적인 감성의 표출은 어쩌면 그녀가 이제는 흔치않은 우리시대의 인상파 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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