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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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현-자연에 대한 마음의 뉘앙스" -박영택(미술평론가/경기대교수) 2004 등록일 2005-03-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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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자연에 대한 마음의 뉘앙스"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교수)


이현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모방도 아니고 재현도 아니고 단순한 심상의 이미지라고 말하기에도 조금은 부족하다. 짙은 파랑 색으로 칠해진 하늘과 바다, 그리고 흰 색으로 덮인 산과 땅에 마른 자작나무가 수직으로 도열해있는 그런 적막하고 스산한, 그러면서도 강렬한 풍경이 존재한다. 대부분 붉은 색의 땅과 진초록의 소나무와 산, 노란 색의 태양이 흰 하늘을 배경으로 떠있는 그림이다. 오로지 산과 나무와 바다, 그리고 달과 해, 소나무와 자작나무만이 차가운 겨울 혹은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침묵으로 자리할 뿐이다. 특히나 바다풍경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바다에 대한 개인적인 기호가 작품 전체에 내려 앉아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수평의 휴식과 위안에 내려놓는다. 바다는 모든 풍경의 근원이다.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고 판독하는데 피로한 눈들은 비로소 그런 의무에서 풀려나 완벽한 자유를 만난다. 그래서 바다는 절대적인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그녀는 바다, 물, 소나무, 달과 태양을 소재 삼아 이를 가지고 자신의 이상적인 자연풍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소나무와 태양, 황토,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이 아니다. 작가는 소나무와 바다, 태양의 이미지를 빌려 자신의 세계를 음미하도록 유도하면서 작가 자신의 예술 하는 마음의 뜻을 헤아려 보도록 권유한다. 여기에는 군더더기 없는 자연의 인상이 명징하고 단순하게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인 장소, 특정한 경관`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색과 선으로, 압축된 형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현이라는 한 개인의 몸과 의식, 정서 아래 걸러진 자연이자 자기 마음이 보고 싶은 자연이다. 결국 이 그림은 자신이 꿈꾸고 이해하고 납득할만한 그런 자연의 상황성에 대한 개인적인 독백에 가깝다. 결국 우리는 세계를 자기만의 눈으로, 자기 프리즘으로 본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고 고독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고 더러는 지루하고 난감하고 아득하기도 하다. 실상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아는 것도 별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연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그 자연을 풍경으로 하고, 삶의 터로 삼는 모든 이들에게 절대적인 위안과 감각과 미의식, 그리고 희망과 꿈, 몽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자연은 변함없고 항구적이며 결코 고갈되지 않는 미술의 소재이자 원초적인 경험의 무궁한 근원이다. 이현의 그림을 보노라면 이 작가의 피에 스며있는 한국인, 동양인으로서의 자연관과 미의식의 한 자락이 유전되고 있음이 감촉된다. 이 그림은 텅 빈 그림,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고 오로지 날것으로서의 자연을 생생하게 체득하게 하는 그런 그림에 가깝다. 그것은 일종의 구멍 같은 그림이다. 보는 이들은 이 그림 안에 담겨진 몇 가지 요소들을 징검다리 삼아 실재 자연을 즐거이 상상하거나 부드럽고 고즈적하게 떠올리면서 가벼이 소요하는 환영에 잠기도록 권유받는다. 머리 속에서 완성되는 그림이자 마음에서 생동하는 그림이다. 바로 그런 그림이 동양의 산수화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양의 그림은 결국 정신적인 활력을 부단히 자극하는 그런 그림이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한 편의 시나 문장이 떠오를 것도 같다. 아니 이 그림 앞에선 모든 이들은 저마다 사춘기 시절이나 싱싱한 젊은 날의 문학적 감수성을 새삼 길어 올려 글 한 줄 쓰고 싶은, 노래나 싯귀를 읊조리고 싶은 가벼운 열정에 잠길 것도 같다. 아마 작가는 그림을 빌어 음악과 시의 세계를 이미지 화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그림은 향수와 서정이 충만하고 음악적 선율과 무드, 그리고 낭만적인 공기가 내려앉아 있다. 그림이 ’시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길‘이라는 말은 이 작가의 그림에 보다 부합한다. 단순하게 추려진 자연이미지와 가장 기본적인 색채의 사용, 인간의 흔적은 부재한 체 자연만이 절대적으로 자리한 이 엄정한 적막함, 그로 인해 증폭되는 모종의 감정적 여운은 미묘한 ’시적 현실/미적 현실‘을 이루어낸다. 자기가 보고 느낀 어떤 순간의 환각을 나타내려는 감각적인 선명함과 조형적인 기쁨이 한데 어우러진 화면에는 색과 선들의 결합에 의해 강렬함과 선명함,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놓여 있다. 그로 인해 작업에서 우리는 강력한’감정이입’을 접한다. 감정이입이란 육체가 외부의 대상물에서 지각하는 것을 그 자체의 긴장이나 최초의 움직임에서 경험하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화면전체에 안온하게 내려앉은 서정성은 감정의 공명상태를 은연중 자아낸다. 그에 따라 이 그림은 다분히 명상적이고 한편의 시처럼 상상적 여운을 주면서 매우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런 느낌은 바로 그 감정이입의 산물일 것이다. 특정한 자연경관에서 받은 체험의 이미지를 낭만적으로 제시하는 그림이다. 새롭다거나 실험적이거나 개성적이라고 말해지기보다는 함축적이며 색채와 평면적인 공간구성 등에서 자신의 감각과 정서를 일관되게 끌어올리는 것이 힘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깊이 있는 서정성, 그림을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감동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그 심연을 충족시키는 배려 속에 그림은 조율되고 있다. 평면 화된 색 면의 경쾌하고 대담한 분할과 배치위로 얹혀진 단순화된 선이 사의적인 풍경의 암호화된 내용을 응축하고 있고 그런 경향은 이 그림을 매우 장식적이고 구성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다분히 암시적이고 축약된 대상으로 추려진 이 그림은 자연에서 받은 집약된 감정과 정서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작가는 대상을 통해 반응한 자신의 몸과 정신의 깊이를 시각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동양적인 관조와 명상에 보다 기울어진 그림이다. 이는 어느 의미에서는 서구현대미술의 평면성과 해석된 추상적 의미가 동양의 회화세계와 흡입된 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로 인해 그림은 우리에게 안락과 고요함의 세계가 자연의 절대적인 성향임을 일러준다. 그것은 도시화, 현대화, 세속화의 가장 먼 끝에서 고요하게 빛난다. 우리들 삶이, 그림이 바로 그 빛나는 지점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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