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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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현", 피에르 프레노-드뤼엘(미술평론가, 파리제1대학교수, 프랑스) 2005 등록일 2005-03-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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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이 아니라 비젼 : 어쩌면 그 사이의 비젼이기마저 한.피에르 프레스노-드뤼엘(미술평론가, 파리제1대학교수, 프랑스) 우선 붉은 오렌지색이 있다. 화면 전체의 4분지 3에 해당하는 높이까지 올라와 있는 균질한 단색. 최소한의 형태를 갖춘 모노크롬. 우리는 그림의 제목을 통해서 겨우 이 그림이 양귀비밭에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펠릭스 발로통이라면 이 모노크롬을 인정했을 것이다. 이 붉은 오렌지색은 우리를 매혹한다. 나무들로 이루어진 초록색 커튼이 그 위에 드리워져 있다(그 나무들은 틀림없이 소나무들이다). 이 붉은색과 이 초록색이 놀랍도록 “마땅한”1) 이유는, 이 두가지 보색이 공간 안에서 자연의 보증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가가 풍경을 <돌려주기> 위해서 캔버스를 구성한다기보다는, 회화를 만들기 위해 자연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관능적인 색채의 화면에 대해 우리가 방금 언급한 바 있는 <나비파> 화가답게, 고요한 이현2)은 무엇보다도 회화로부터 충분히 떨어져 있으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사실, 발로통처럼, 이 한국의 여성 화가에게도 세계의 <피부>를 (두)겹으로 만들기는 즐거운 구실에 불과하다(모든 것이 그 구실의 계기를 촉발시키므로). 요컨대, 파바베리 디 비아발레스트루치 Papaveri di via Balestrucci 의 그림은 이 화가가 자신의 여정의 어느 주어진 순간에 보았던 것과 닮아있기는 하지만(또는 닮아 있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화가가 자신의 <동기>와 대면하여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우리를 사로잡는다.그것이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화가가 비젼을, 사물을 파악했음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회화라는 고유한 장소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비젼. 초록색과 오렌지색 사이에, 하늘의 역할을 하는 회백색이 있다. 아마도 실제의 색채는 푸른 색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랏빛과 황금빛을 띤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두 겹의 띠가 있다(물론 바다와 모래밭이 틀림없다). 전체가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데, 풍경의 구성은 벌써 1세기 전에 지오반니 파토리 Giovanni Fattori, 감각과 지성의 사잇길에서 회화의 상황을 창조해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이 macchiaolo 가 그렸던 그림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 로마의 한국여성은 그 정도로 이탈리아에 침윤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반도의 두 화가가 생각지도 않았던 선구자의 그림 안에서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현의 많은 그림들은 유럽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Neve, notte in blu ou l’humoristique Sogno II), Indugio nell􀡑 infinito ou Papaveri di via Balestrucci와 같은 다른 그림들은 그와는 반대로, 회화적으로 말해서, 이 멀리에서 온 여성에게서 근원에 대한 질문이 지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런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다듬어진 단색과 더불어, 이 그림은 우리에게 이 여성화가가 1900년대 경에 나비파들이 느꼈던 필요를 다시 발견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양을 거의 구획된 공간 안에 데리고 오려는 욕구(샤를르 필링제Charles Fillinger). 역사의 아이러니. 우리는 나비파들이 극동에서 온 깔끔한 판화들에 열광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21세기 벽두에 망막예술(마르셀 뒤샹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은 전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즐거움은 화가들을 반드시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전염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사방에서 화가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비평이라는 작은 세계-평판의 제조기인-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리는 화가들이. 유럽에서나, 외국에서나, 그림은 그것으로 어느 날 한 몫 챙겨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화가와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 환경에서, 장식적 유혹을 이겨낸 직업의 소박하지만 단순하지는 않은 기쁨을 고양시켜주는 이 화가의 그림과 함께 있으면, 감동이 밀려들어온다. ..............................................................................................................1. 즉 그 두가지 색깔이 어울린다는2. 이현에 관해서는 La pace nell’infinito, Editions Bora, Bologne, 2004를 참조할 것. 2004년 연말 유네스코 전시회에서 제출된 카탈로그. 3. 우리는 <팔미에리 사거리>(La rotonde de Palmieri, 1866, 플로렌스, 팔레 피티, 나무판 위에 유화)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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