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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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유 있는 아름다움 - 지상현 저 등록일 2008-0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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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아름다움 - 지상현 저
'화려한 정적 - 이 현' 에서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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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그림만큼 색상대비가 강한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야수파의 마티스보다도 강하다. 마티스의 그림에도 빨강, 노랑, 파랑, 녹색의 대비가 많지만 이 색들을 연결해주는 중간색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색의 밝기를 어둡게 하는 등 색상대비의 완화를 위해 나름의 조치를 많이 취해놓았다. 반면 이현의 그림에는 말 그대로 고채도의 보색대비가 주를 이룬다. 오른쪽 페이지 그림은 앞쪽에 실린 “발레스트루치 가의 파파베리”에 사용된 색채를 컬러 큐빅color cubic이라 부르는 RGBred,green,blue 공간에 분석해 놓은 것이다. 이현의 다른 그림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컬러 큐빅 안에 색채가 분포되어 있는 양상을 보면 원화에서는 놓치기 쉬운 많은 화풍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현의 경우 일단 공간 안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몇 안 되는 색들이 정육면체 안의 모서리에 극단적으로 몰려 있다. 사용된 색채의 물리적 채도가 매우 높음을 뜻한다. 반면 검정 모서리 쪽에는 거의 색채가 없다시피하다. 색의 그룹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색들이 서로 중간색 없이 만나고 있는, 다시 말해 보색대비가 심하다는 말이다. 이 컬러 큐빅의 색채 분포에서도 이현의 그 한적하고도 청명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재미있다. 반면 마티스의 “식탁”에 나타난 색채는 색 그룹들이 서로 원을 그리며 연결되어 있다. 그만큼 보색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연결 색들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미술심리학자 크라이틀러는 보색대비는 감상자의 마음을 긴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고 했다. 감상자는 생활 속에서 생긴 여러 이유로 긴장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긴장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러는 이완되고 더러는 이완되지 못한 해 마음속에 남는다고 한다.
이 긴장을 ‘잔여 긴장residual tension’이라고 한다. 잔여 긴장은 심리적 안정을 깨뜨리는 요인이어서 으레 이를 해소하려는 동기를 찾게 된다. 이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완되기 쉬운 새로운 긴장을 경험하고, 이 긴장을 이완시키면서 동시에 잔여 긴장도 푸는 것이라고 한다.
크라이틀러는 이완이 쉬운 긴장을 생성하는 대표적인 방법의 하나가 예술 감상이라고 했다. 예컨대 연극을 볼 때, 마음을 졸이게 하는 클라이맥스를 거쳐 종반부에 다달아 극의 갈등 구조가 해소될 때 긴장이 이완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이 긴장과 이어지는 이완이 바로 예술 감상이 주는 즐거움의 비밀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걸작 속에서 이런 긴장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긴장을 일으키는 가장 대료적인 요인의 하나가 바로 대비다. 그 가운데 색상대비는 가장 대표적인 대비 중 하나로 꼽힌다. 색상이 보색 관계일 때, 즉 색상대비가 가장 심할 때 크라이틀러는 ‘색채 충돌color clash’이 발생한다고 한다. 바로 이현의 그림처럼. 색채 충돌은 말 그대로 무언가 충돌이 일어났을 때의 요란스럽고 혼란스러우며 흥분된 인상을 주기 슆다.
그러나 보색으로 가득한 이현의 그림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적감을 준다. 데 키리코나 영화 “지중해”처럼.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쉽게 단순한 색면과 수평 구도를 생각할 수 있다. 모두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특징들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색채의 충돌을 피하도록 하는, 다시 말해 긴장을 이완시키는 세밀한 장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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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 복잡도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적 직감은 복잡도라는 중요한 미적 변수를 놓치는 법이 없다. 아마 이런 이유로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이현의 그림에서도 복잡도의 과학은 예외 없이 작용되고 있다. 미적 힘이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고 되는 대로 그린 듯하지만 색과 형태 속에 나름의 복잡도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담백하고 정숙한 느낌과 만나는 것은 그 장치들이 아주 알뜰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고,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복잡도만 확보하고 남는 것이 없도록 한 이현의 살뜰함 때문이다.

* 저자 지상현 - 지각심리학 박사, 한성대학 미디어 디자인 컨텐츠학부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색, 성공과 실패의 비밀', '이제는 색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 '이유 있는 아름다움'등이 있고, 아름다움의 과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한 심리학적 미술비평, 그리고 디자인의 과학화를 실천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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