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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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 사이" -이 일/미술평론가 1994 등록일 2005-03-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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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의 공간 사이


이현 개인전에 부쳐


화가 이현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낯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주로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활동해 온 작가로 특히 이탈리아 로마에서 성장한 화가이다. 서울에서의 개인전도 이번이 그녀의 첫 번째 것이며, 따라서 화가로서의 첫 선을 보이는 셈이다. 그녀는 이미 로마에서 지난 해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그것을 마치고 유럽 주요 도시를 순방한 후, 5년간의 로마 체류를 일단 마무리 짓고 같은 해 연말에 귀국했다.
이현의 회화는 반드시 그것이 우리에게 첫 선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신선한 느낌을 우리에게 안겨다 준다. 우선 그녀의 화풍 자체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신선함을 지니고 있다. 흔히 말하는 구상, 비구상이라는 한계를 떠나서 그녀의 회화는 화면 구성의 문제에 있어서나 색채 또는 형상 처리에 있어 독자적인 화법(畵法)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독자적 화법은 다름이 아니라 구상적 모티프가 비구상적인 회화 공간과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으며 그 회화 공간은 어디까지나 평면적인 색면 분할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구상적 모티프로서 개별적인 대상은 거의가 그 색면과 그것을 크게 구획 짓는 선에 의해 규정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현의 회화는 구상회화이다. 그러나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 그 자체는 순수한 회화적 차원에 있어서는 이미 2차적인 의미 밖에는 지니고 있지 않으며, 실제로 그 대상들은 대담한 단순화와 함께 각기의 개별성을 거의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거의 추상화(抽象化)된 색면 공간이며 그것이 바로 화면 구성의 요체를 이루고 있다.
추상화(化)라고 했을 때 이는 비단 어떤 특정 대상의 형상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색채가 또한 그러하다. 색면 그 자체가 추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선명한 순색에 의한 색면 분할과 그 대비(對比)또한 그 못지 않게 추상 세계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순색의 색면 분할과 극도로 단순화된 형상들이 서로 동화되어 간결하면서도 밀도 있는 견고한 화면 구성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받는 우리의 느낌, 그것은 화가 자신이 '나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명쾌한 것들을 좋아한다' 고 말한 바 그대로의 신선한 청랑함이다.
한편 주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누드를 비롯하여 인물, 정물 및 풍경 등은 여느 구상회화의 경우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요컨대 우리의 일상적 주변의 세계이다. 그 일상적 세계가 이현의 회화에 있어서는 오히려 일종의 몽환적(夢幻的) 세계, 다시 말해서 현실과 비현실이 아무런 스스러움 없이 공존 또는 교감하는 세계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하나의 동질적인 공간 속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누드는 누드이되 그것이 여체라기 보다는 하나의 순전한 형상적 모티프로써 추상적인 색면 공간 속에 통합되고 있으며 또는 풍경의 경우 그것은 결코 실경(實景)이 아니라 작가가 품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이미지 그 자체의 형상화(形像化)이다.
이른바 '심상(心像) 풍경'바로 그것이다.
이제 이현에게 있어서의 보다 절실한 과제는 인물이든 풍경이든 또는 정물이든 이들 대상 세계가 순수한 공간,색채,형상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또 다른 차원에서의 외적 세계와 작가의 내적 세계와의 경계(境界)없는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실질적으로 그 외적 세계는 개별적인 대상과는 아랑곳 없이 순수한 색면 구성에 의한 회화공간 속에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현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감성적 포용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이 그녀의 회화로 하여금 우리의 일상적 현실 너머의 상상적 공간에로 이끌어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91년에서 '94년에 걸쳐 제작된 작품들이다. 따라서 로마 체류 기간의 작품들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특히 귀국 후의 최근작에 있어서는 그 이전의 화법이 보다 더 대범스러워지고 또 개방적인 것이 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외적 세계와 작가의 내적 세계와의 직접적이면서도 폭넓은 동화(同化)내지는 교감을 의미하거니와, 이는 곧 한 화가로서의 확고한 회화적 비전의 정립을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개인전이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이라고는 했으나 이현은 곧 이어 내년에 미술회관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로마를 비롯, 파리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전시회도 이미 기획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이 젊은 화가의 한 화가로서의 새로운 전망과 함께 우리나라 회화의 국제 무대 진출이라는 차원에서도 기대하는 바 크다 하겠다.

이일 / 미술평론가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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