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채의 화가 이현, 지중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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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문 번역문 - 이현, 비젼의 "본질성" -레나또 치벨로 (미술평론가, 시칠리아 미술대학장/이태리) 등록일 2005-03-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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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비젼의 "본질성"

-RENATO CIVELLO 레나또 치벨로/미술평론가, 시칠리아 미술대학장/이태리

한국 미술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도 1972년의 3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Ca' PESARO의 현대미술관에서 국제 그래픽부문에 소개된 신 전통주의 작가 서승원, 윤명로의 평면도안이며, 마치 아방가르드 경향의 생생한 표현주의를 보는 듯 했다. 그 후 로마에서 열렸던 몇 몇 좋은 전람회에서 서구 전통모델들과 유사한 한국작가들의 조각과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무엇인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한 화가와 만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현, 그녀가 로마에 들어와 거의 5년만에, 로마에서도 구상예술의 중요한 터전인 GALLERY D'ARTE ELISEO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이현은 서울과 로마의 대학에서 문화, 예술이론, 예술창작 테크닉 등 폭넓은 학습과 충분한 연구과정을 거쳐, 이제 단연 출중한 화가군에 속한다.
간결한 색채의 선택으로써 정서와 이념의 시각화, 통합화를 꾀하고, 언어적 장치를 통해 이끌어 내고 있는 전체조화는 언어를 능가하며, 따라서 기능적이고 효과적인 성최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는 창작품을 통해 보다 넓은 의미에서 총체적 합치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이다.
서울출신의 이 유능한 화가의 작품에서, 인식론적 천착을 통한 자각과 지식의 능력을 감지할 수 있음을 물론, 스스로 직관하여 인식하며, 나날이 점진적으로 발전되는 의식의 현현(顯現)으로 장래세계의 최상의 한 작가의 선존(先存)을 예감하게 한다.
작품은, 한층 더, 그 독창적 표현으로 강하게 부딪혀온다. 신선한 매력과 알 수 없는 어떤 신비함으로, 영원성으로, 아무리 그것이 이국인의 것이라해도 마음을 사로잡고 빠져들게 한다. 암시는 간결하다. 변증법적 논리가 뒤엉켜 교차하는 이 작품들의 메리트에 대한 평가는 논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색조의 율동속에서 각각의 음색들이 어울리며 이루어내는 환상(감성적 색조의 우아한 이동, 시각적 즐거움, 정선된 단일의 색들)은 결코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메리트며, 간결한 색채들의 "열림", 단순화된 구성의 정경, 원근을 피해 전적으로 우선된 서정적 대비의 공간속에서 천천히 엷어지는 대기..... 등이 또한 그렇다.
이렇듯, 이현의 그림은 현상학적 실체를 지키고 있음에도 복합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굳이 계보의 갈래를 따져보자면, 아마도 첫 눈에는 VAN DOESBURG POSTMONDRIANIANNO의 단순주의 "구성회화"(상징적 직각의 프레임에 도식적 자연주의를 암시)계열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와는 대치된다. 혹은, 역으로, ROUSSEAU나, PEYRONNET,
BREVEGLIERI, USELLINI 등과 같은 소위 "현세의 일반적 대가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 순수 천연의 무(無)에서 발아된 선봉자의 출현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문화란 자신의 가슴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이현의 그림에서, 시적인 본질은 정형화된 보편의 것이 아닌 나체의 벌거벗은 표현력과 결혼했다. 용기있게, 눈부시게, 거기에는 언제나 간략한 시각적 구성의 토대위에 맑고 깨끗한 색채 대비의 유희가 있고, 사로잡히고 감동케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
순백이 있다. 노란색과, 깊은 블루가 거기 있다. 시선을 주목시키는 몇 몇의 풍경들, '수목 위의 달' 과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초록과 블루, 바다와 하늘을 코멘트하는 몇 줄기 나목의 '여명의 고요', 또는 '무한(無限)','바다위의 초록','5음계-자연'과 같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껍질 속 생명의 맥박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태동하는 빛의 떨림, 그리고, 시각적 지각과 관념을 초월한 이미지들, 그것을 만나리라. 감각-정서, 사유-시, 지각과 의식과 감성이 낳은, 끊임없이 마음 깊이 파고드는 참답고 은밀한 세계를 만나리라. '고호에 대한 기억' (프랑스 fAUVERS에 보존된 1890년의 오베를 교회를 그린 것으로 믿어진다) 역시 작가의 내면이 낳은 것이다.
이 순수한 그림 그리기는 내면의 작업이며, 거기 보여지는 여성적 형태들은 아무리 부정한다해도 도식적 구조의 그것에 상위이고, 명암의 소상들은 그들의 생체적 밀도를 전혀 상실하지 않고 있다. 회색과 검정 자켓의 젊은 청년들, '달과 블루 안의 첼리스트'에서 소리는 점점 따뜻해지는 악기의 키에서 몸을 떼지 않으며 조용히 한 공간 안에서 조화롭다.
이현의 그림 그리기는, 그 본질적 특성에서, 신 야수파의 MONACHESI를 상기시키는 음율의 강세에 따른 기능적 섬세함과 치밀성을 꼽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먼저 생명의 박동에 반응하는 것이다.
또한 미학적 만족의 필요조건 뒤에, 가시성의 도입으로써 시선을 불사르는 조화일치, 거기에는 자유주의자의 유전이 내재하며, 영혼을 끌어당기는 시적이며 서정적인 무한의 시간이 있다. 끊임없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 자신의 현재 포지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정을 여과해 냈다. 장래의 세계에 이현과 같은 화가의 대성은 확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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